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델바이스 해적 (문단 편집) == 전후의 재평가 == 하지만 2차 대전 패전과 나치의 소멸 후에도 이들은 제대로 명예 회복을 받지 못했다. 에렌펠트 그룹의 일원으로 처단된 이들은 여전히 독일 사법계의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살인범으로 규정되어 있었고 나치 잔재 청산보다 경제 재건에 몰두한 [[콘라트 아데나워]] 정권 치하에서 유가족들의 복권 운동은 끊임없이 방해를 받았다. 하지만 [[68운동]]으로 좌파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이들에 대한 재평가와 복권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다. 결국 1980년대 들어 역사학계에서도 에델바이스 해적을 [[하얀 장미]]에 준하는 반나치 청소년 결사 운동으로 재평가하기 시작했고 이들에 대한 국가 배상과 명예 회복, 상훈 등이 주어지고 있다. 1986년에는 가장 강하게 저항했던 쾰른의 에렌펠트 그룹을 기리기 위해 그들이 처형당한 거리에 추모비가 건립되었고 1990년에는 청소년 인권 증진에 기여한 이들에게 수여되는 바르텔 싱크 상이 제정되었다. 2004년에는 니코 폰 글라소의 감독으로 에렌펠트 그룹의 저항 운동을 극화한 [[영화]] '에델바이스 해적' 이 제작되었고 2005년부터는 에렌펠트 그룹과 여타 에델바이스 해적 생존자들이 쾰른의 평화공원에서 에델바이스 해적 축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